# 주저리주저리
어렸을 때부터 비염이 심한 편이었다. 그래서인지 중이염으로 이비인후과와 친했고, 증상이 심했을 때는 귀에 찬 물과 피가 사라지지 않아 관을 삽입하는 시술도 했었다. 게다가 알러지도 있어서 기본 3~5번 연속 재채기는 평소에도 디폴트다.
집에 고양이를 키우는데, 고양이를 키운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소리가 먹먹- 하게 들리기 시작했다. 또 중이염인가 싶어서 이비인후과를 가게 되었고, 귀 안에 혈종(피멍 든 정도)이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.
(알러지 검사를 해보니 먼지 + 고양이 털 알러지가 있었고, 혈종의 원인이 집에서 같이 사는 고양님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하셔서 약 처방받아서 먹으니 한 번에 사라졌다. wowwww-)
그날 의사 선생님께서 검사하면서 코 안에도 살펴보니 오른쪽 코 뼈대(?)가 휘어있다고 하시면서, 비중격만곡증 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. 이 진단을 들은 후에 내가 비염이 왜 이렇게 심했었는지, 왜 입을 벌리고 잤었는지, 왜 숨이 잘 안 쉬어지는지 등등... 모든 것들이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.
# 현재 내 상태
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'입 벌리고 잤다.' 를 위한 빌드업이었다.
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자동으로 입이 벌어져 구강호흡을 했고, 그 결과 얼굴이 길어지게 되었다. 애기 때 사진을 보여주면 '왜 이렇게 역변..했어?' 라고 말할 정도로 빗살무늬토기 상이 되어버렸다.
그리고 부정교합 상태이다. 음식을 먹을 때 이빨로 잘라먹는 것이 안돼서 혓바닥으로 잘라먹는 게 일상이었고, 부정교합으로 비대칭이 생겨서 왼쪽 턱이 오른쪽 보다 더 나오게 되었다. 그리고 턱의 길이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 긴 편이고, 주걱턱도 있는 편이다.
평상시에도 사진 찍힌 것을 보면, 정면이야 원래부터 수도 없이 봐왔으니 그렇다치고... 측면이 정말이지 누가 찰흙으로 초승달을 빚어놓은 것 마냥 생겨서 매번 놀랍다.
어렸을 때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손에 이끌려 치과를 간 적이 있다. 딸래미의 컴플렉스를 어떻게든 고쳐주고 싶은 엄마는 교정이라도 해주려고 하셨던 것 같다. 하지만 나는 1분도 안돼서 컷 당했다.
접수하고 진료 받으러 들어가 의자에 앉자마자 의사 선생님께서 친절한 목소리로 하신 말...
"이 친구는 교정만 가지고는 안돼요^^ 이 케이스는 양악이랑 교정이랑 같이 진행하셔야 해요^^"
주변에서는 양악할 정도로 심하지 않다고 다들 말하지만, 20년간 컴플렉스였다보니 위로가 되지 않는 건 사실이다. 그래도 나름 컴플렉스를 가진 것 치고는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온 것 같다.
그러던 중... 코로나 시대가 열리고, 나는 마스크의 맛을 알아버리고 말았다... 마스크만 쓰면 컴플렉스가 싹- 사라지는 기분이랄까? 이래서 '마기꾼' 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를 느꼈다.
코로나가 끝나 마스크를 벗어도 됨에도 불구하고, 나는 바로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..
# 그럼 왜 이 글을 써?
결국 나는 양악을 하기로 결심했다.
사실 예전부터 "양악하고 싶다~ 교정하고 싶다~🎵" 노래를 불렀지만 (진짜로 노래 부른 건 아님), 막상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. 무서움도 컸고, 비용도 많이 들고, 이것저것 조사하려니 귀찮기도 하고,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고, 이 얼굴로 살아오다 보니 정(?)이라도 들었는지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.
"음식이 앞니로 잘 안 잘려서 불편해..?"
→ "혀로 잘라서 먹으면 되지~"
"사진 찍으면 맨날 얼굴이 비대칭이야..?"
→ "보정하면 되지~"
"얼굴이 너무 긴 것 같아..?"
→ "마스크 쓰면 되지~"
매 순간 이런 식으로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.
이런 식으로 살아오다보니, 어느 순간 20대 후반 취준생이 되버렸다. 나에게 앞으로 양악은 없겠거니 하고 평소처럼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,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툭- 말을 내뱉었다.
"너 양악은 안 할 거야?"
매번 반대를 했던 엄마가 이런 말을 꺼내니 좀 의아했다. 알고 보니 외삼촌께서 이빨이 아프셔서 치과를 갔는데, 원인이 부정교합 때문이라 최근에 늦은 나이지만 교정을 시작하셨다고 한다. 외삼촌께서 교정하려면 하루라도 더 어릴 때 하는 게 좋다는 말을 하신 후로, 엄마의 생각에 조금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.
예전 같았으면 좋아라 했겠지만, 취업을 앞둔 시점에서 불안함이 커서일까? 선뜻 "할래" 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.
만약 이 시점에서 양악을 하게 되면 최소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릴 텐데...취업에 성공해도 회사 다니면서 양악 수술은 어떻게 할 것이며, 취업 준비를 계속해도 다른 친구들은 하나둘씩 취업하는데 1년 반 동안 가만히 있자니 불안하고...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었다.
그렇다고 또 선뜻 "안할거야" 라는 말도 안 나오는 것 보니, 나는 양악에 대한 미련이 확실히 있었다. 그래서 엄마한테 "한 번 고민해볼게..." 라는 말을 남기고, 내가 양악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.
- 얼굴형이 20년 동안 컴플렉스였다.
- 매번 사진 찍을 때마다 스트레스 받고, 자신감이 없었다.
- 음식을 먹을 때, 부정교합 때문에 혀로 잘라 먹어야 되서 불편하다.
- 시간이 더 흐르면, 양악할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.
- 경제적으로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해야 나중에 덜 힘들다.
(나는야 효년... 하지만 사실인걸...)
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결정장애인 나는 결정을 못내려서, 일단 병원들을 돌아다니면서 상담받고, 고민할 시간을 좀 벌기로 했다.
교정 상담 시작한 게 2022년 10~11월, 중간에 일정이 있어서 잠깐 쉬었다가, 양악 상담 시작한게 2023년 3월이다. (상담받은 과정들은 다음 포스팅 때 써보려고 한다.)
교정과 양악을 같이 진행하는 케이스이다 보니 시간이 꽤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. 고통의 시간을 그냥 보내기는 아쉬워 일기라도 써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.
개인적으로 기록 남기는 목적이 크겠지만, 행여나 이 글을 보는 사람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, 나와 같이 양악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소소하게 공감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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